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12/16 [20:34]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12/16 [20:34]


  이 세상에 땀을 흘려 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땀을 흘렸고, 왜 흘렸는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일이다. 금년에는 111년 만에 찾아온 더위를 이겨내려고 다들 힘들어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던가? 여름날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서 열심히 땀을 흘렸고, 다른 날은 채련공원採蓮公園 테니스장에서 뜨거운 햇빛을 쪼이며 한없이 흘려보았다. 숨이 콱콱 차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쓰러진다고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땀을 많이 흘려 비 맞은 수탉처럼 땀에 흠뻑 젖었다.
 우리나라는 농업국가여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일컬어왔다. 그래서 땀을 많이 흘리는 국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터로 나가는 것이 일과였다. 그래서 그런지 선하고 착한 국민으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한 국민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살아오면서 땀을 무척이나 많이 흘렸다. 가뭄과 홍수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소중한 땀인데도 그냥 보통 일상의 땀으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평범하게 땀을 흘리기만 했다. 땀을 흘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너도나도 흐르는 땀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비지땀을 흘렸지만 가뭄으로 끼니가 어려운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세금과 학비를 면제해 주었다. 농부들은 이런 고된 땀흘림을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고 어떻게든지 자식들을 가르쳐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손이 모자라 파종시기를 넘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조퇴를 하고 귀가하여 도와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려운 집안환경으로 제대로 학업을 닦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희망을 접는 친구들이 많았다. 금년 2월에 군산대 교수로 퇴임한 친구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절반 넘게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우리에게는 너무 큰 변화가 왔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일하는 것보다 공장이나 도시의 직장으로 옮기면서 땀의 방향은 일대변화를 가져왔다. 땀을 흘려도 그늘이나 어렵지 않은 고급 산업인력으로 근로 조건이 좋은 곳으로 찾아가려 했었다.
 나도 몸이 허약하여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학업에 정진하여 바라던 선생님이 되었다. 이 사회를 위해 바른사람이 되는 길이었다.
 그 시절 나보다 순조롭게 잘 나갔던 친구들이 중도에 길을 잘못 들어 순탄한 인생길을 걷지 못한 생각이 난다. 이제 나이 들어 가슴이 아픈 사연을 접할 때는 그동안 ‘값진 땀을 잘못 흘렸구나’ 안타까운 사연을 종종 듣는다. 많은 땀을 흘려 땀방울의 진가를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보통 우리는 땀을 흘리기만 했지 소중하고 가치있는 땀이 나를 위해 어떻게 흘렸는가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보는 시간을 가져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나는 40년 넘게 국가가 원하는 땀을 흘리면서 살았다. 햇빛에서 흘리는 땀이 아니라 그늘에서 지?인?용知?仁?勇을 기르는 선비의 마음으로 2세교육을 담당했다.
 퇴직한 뒤 농부들이 흘리는 땀을 흘려보며 인생의 참의미를 느껴 보기로 했다. 첫해에는 부모님이 가꾸었던 밭으로 전주에서 60키로미터가 넘는 순창까지 다녔다. 그 날 늦은 시간까지 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힐링이 아니라 노동이 되어 아내가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너무 원거리여서 생의 보람과 땀의 소중함을 찾고자 전주근처에 밭을 마련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농작물을 가꾸며 정성을 쏟았다. 마늘, 토마토, 옥수수, 도라지, 유실수 등이 잘된 것을 보고 옆에서 같은 땅이지만 경작하는 고향선배는 언제 그렇게 농사일을 해 보았냐며 칭찬을 하였다. 금년 3년째에는 그동안 정성을 쏟아 길러 주변사람들이 지나가며 햇빛을 받고 풍성하게 달린 대추열매를 보고 욕심이 생겨 50키로그램을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곳 대추는 원치 않고 우리 것 만 고집하며 사겠다는 것이었다. 자기 마음에 들고 크다며 예쁜 열매를 따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탁한 사람의 아내는 작업복과 모자를 쓰고 장화까지 신고 오셨다. 힘들지만 처음으로 농사일을 해보는 예쁜 손 같았다. 열매 하나하나를 딸 때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땀을 흘린 만큼 작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퇴비를 듬뿍 주고 잡초를 뽑으며 늘 보살피고 가꾸었다. 어린 손자를 귀엽게 어루만지듯 지극정성으로 가꾸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오가며 아주 먹음직스럽다며 감탄을 했다. 이곳은 요양병원 환자들의 산책길이어서 유독 기쁨이 더 컸다. 무리지어 사이클을 타고 오가는 젊은이들의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뜨거운 여름날 햇빛에서 이마를 훔치며 흘리는 땀방울의 결정체임을 알고 만족해 했다. 노력한 만큼 기쁨이 배가되었다.
 금년에는 첫해 수확물이라 주로 선물하는 쪽을 택했다. 마침 서울에 있는 아들이 와서 손자와 손녀, 아내와 함께 한 포대를 따서 직장에 있는 60여 명의 동료들에게 농촌의 꿀 같은 향기를 나누어주라고 주었다. 주변 고마운 사람 10여 명에게도 정을 나누어 주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땀을 흘린 만큼 열매는 속이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땀을 흘리고 보살피냐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색깔이 달랐다. 땀을 옛날처럼 무작장 흘릴 것이 아니라 작물이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해 달라는가를 파악해야 했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진실되고 진정한 땀을 요구한다. 요즈음처럼 정이 메말라가는 사회에서 어떤 정을 주고 받아야할 것인가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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