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6.25전쟁의 참상은 남북한 체제 전쟁이었다. 좌우의 치열한 이념 대립으로 산천 곳곳이 아프게 찢겼다. 그러나 이를 계속 묻어두면서 화해와 평화의 단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교훈 없는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전쟁의 역사는 이미 늦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수려한 산세로 이름난 남원 지리산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숨어들면서 고통과 비극의 장소였다. 빨치산은 한국전쟁에서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과 여순 반란 사건을 일으킨 군인, 사회주의에 심취한 농민 등 세력만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남부군으로 재편돼 군 보급로와 관공서, 민가를 공격해 곳곳에서 밤낮 없는 격전이 벌어졌다. 선량한 주민들은 그저 한 목숨 살기 위해 낮에는 국군에 밤에는 북한군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했던 좌우 이념 대립과 게릴라전은 치열했다. 지리산뿐 아니라 순창 회문산과 장수 장안산도 민간인의 무고한 죽음과 군경의 소탕작전이 극심했다. 산하 곳곳이 참혹한 전장이었다. 하지만 국군이 대승을 거둔 격전지나 빨치산 은거지, 그리고 당시 생활상은 사실상 전시관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정규군 간의 전투는 거의 없고 좌우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지난 70년은 외면하고 피했다. 모두 묻어두는 금기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전쟁의 현장은 그렇게 세월이 흘러 수풀이 우거졌다. 참전자들까지 대부분 한 맺힌 삶을 마감해 그 흔한 안내판 하나 변변치 않다. 지금은 흔적조차 확인이 어렵다. 부분적으로 보관 정리만 돼 있을 뿐이다. 전쟁 당시, 육군 훈련소가 세워지고 중공군 포로 2만 명이 수용됐던 제주에도 많은 전적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곳이 많다.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인원이 포화되자 제주도로 이송된 중공군 포로는 2만 천 여 명이다. 이들은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지역과 현재의 제주공항 인근 등 4곳에 분산 수용됐다. 7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직까지 당시의 흔적이 남은 곳은 단 1곳이다. 마늘밭 한 가운데에 수용소 건물로 추정되는 벽 일부만 남았다. 전적지임을 알려주는 표지판만 설치됐을 뿐 돌벽은 곳곳이 무너지고 농자재와 폐비닐이 널브러져 있다. 98육군병원은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 창설된 다음해인 1952년 들어섰다. 1동만 남은 병동 건물은 201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스러져간 군인들의 혼이 서린 화장터에는 나무만 자라고 있다. 현대사의 아픔이 서려있는 한국전쟁 참상의 현장은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사이 잊혀진 역사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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