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 터널 기공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9/20 [10:40]

한일 해저 터널 기공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9/20 [10:40]

 

 

 

20161114일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에 위치한 한일해저터널 현장에서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일해저터널 기공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19811110일에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발표한 이후 19861110일 사가현 가라쓰에서 개최한 한일해저터널 기공식의 3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이에 앞서 19811110,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전 세계 노벨 수상자를 비롯해 각 분야의 학자들 총 720명이 참석한 가운데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했다.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를 종단하여 터널이나 혹은 철교로 일본열도에 연결하고 일본을 종단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국제평화고속도로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건설된다면 아시아 3국은 문자 그대로 평화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일체화될 수 있다.

 

국제하이웨이는 동북아 국가 간 사람, 물건,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를 열어서 경제공동체 구축을 통해 평화와 안전을 이루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 일환으로한일해저터널프로젝트는 문선명한학자 총재 비전에 따라 1982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 건설 사업단이 발족됐다.

 

19835월 일본 북해도대학 사사 야스오 명예교수를 중심으로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됐다. 그해 7월에는 일본 규슈(九州) 사가현 가라쓰(唐津)와 이키(壹岐), 대마도의 육상부와 해역부 조사를 개시했다. 그리고 198610월 사가현 진제이초 나고야에서 제1차 조사를 위한 파일럿 터널 공사를 시작했다.

 

일본 측은 지상과 해양, 항공지형 조사를 실시했으며, 터널구간을 따라 환경역학조사도 병행했다. 그리고 가라쓰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진행했다. 현재 바다 밑으로 547m까지 굴착한 상태이며 현재도 지질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6한일해저터널연구회를 설립한 뒤 198810월 거제도 일대 5개 지역에서 시추조사를 벌였다.

 

일본의 해저터널 건설 기술은 1964년 세이칸 해저터널을 뚫을 때부터 확보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1986년 영불해저터널 착공 때도 일본 측 인사가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한일해저터널은 해저구간만 150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최대 220m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개발된 해저터널 굴착 공법이 모두 동원될 예정이다.

 

19905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김대중(19999), 노무현(20032) 대통령도 해저터널에 관해 긍정적 의사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도 해저터널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郞)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공식 제의한 바도 있으며, 2003년 일본 자민당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100년 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일해저터널은 남북 관계 개선 효과도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북한 개방과 협력도 앞당길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와 아시아 공동체 형성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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