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泥田鬪狗)와 실사구시(實事求是)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1/17 [09:30]

이전투구(泥田鬪狗)와 실사구시(實事求是)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1/17 [09:30]

 

운이 다한 고려조정을 뒤엎고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42-1398)에게 8도 강산 사람들의 심성을 말 해달라고 하자, 이에 정도전은 경기도 사람은 경중미인(鏡中美人)이요, 충청도는 산이 수려하여 청풍명월(淸風明月)이며, 전라도인은 재주가 많아 가는 버드나무 같은 풍전세류(風前細柳)격이요, 경상도인은 성격이 곧아 송죽대절(松竹大節)이며, 황해도인은 춘파투석(春波投石),평안도인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강원도인은 바위 밑 오래된 불상 같은 암하노불(岩下)이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인은 성격이 급하고 용맹하여 진흙탕에서 싸움하는 이전투구(田鬪狗)같사옵니다. 라고 하니 이성계의 얼굴이 붉어짐에 정도전이 재빨리 함경도인은 또한 부지런한 소처럼 돌밭을 잘 갈아 엎는 석전경우(石田耕牛)같사옵니다. 라고 말하니 이성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더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가부키 공연에서는 무대에 진흙탕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싸우는 난투극을 벌이는 풍속이 있는데, 일본말에 도로지아이(どろじあい 泥仕合)란 말이 이전투구와 비슷하다. 오늘날 이전투구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서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국민과 민생을 위한 실익과 꿈과 희망을 주고 민의를 받들어 정책 대결의 장이 되어야 함에도 요즘 정치인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당리당략에 치우쳐 서로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서 조선조 효종 때 실학의 비조(鼻祖)라 부르는 반계 유형원(馨遠1622-1673)의 백성을 위한 실학사상을 알아보자. 반계는 외가인 서울정릉에서 태어나 외삼촌 이원진과 고모부 김세렴(일본사신)을 스승으로 삼아 높은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였으며, 7세 때 ‘정치의 근본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을 갖춘 법규에 의해 시행됨’을 깨우치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이다. 반계의 부친 유흠(1596-1623)2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내다가 인조반정 때  옥사를 당했는데, 반계의 나이 2세 때였다. 임진왜란이란 크나큰 전란을 겪은 조선은 또다시 10만 대군의 병자호란(丙子胡亂-1636)으로 나라는 처참하게 짓밟혔다. 증참판(贈參判)을 지낸 조부 유성민을 따라 조선의 10대 피승지 변산반도 우반동에 터를 잡고서, 반계는 33세 때 진사시에 합격은 했어도 부친의 옥사로 인해 벼슬은 않고, 165232세 때 가솔을 이끌고 20년 동안 자연과 벗 삼으며 변산 우반동에서 반계수록(磻溪隨錄)28권을 집필하였다. 반계수록은 1652년 효종3년에 시작하여 49세 되던 해 1670년 현종11년에 완성했다. 28권 중 1권에서 8권까지는 백성을 위한 전제(田制)이며,9-12권에는 교육제도의 교선(敎選),13-14권은 임관(任官),15-18권에는 직관(職官),19-20권은 녹제(),21-24권은 병제(兵制),25-26권은 속편(續編),27권은 부록(附錄),28권은 반계수록보유(磻溪隧錄補遺)로 나눠졌다. 반계의 실학사상의 핵심은 부정부패로 인한 삼정(三政)의 문란을 바로 고치자는 것이다. 첫째는 토지세인 전부(田賦)와 둘째는 병역대신 내는 군포(軍布),셋째는 빈민구휼미인 환곡(還穀)에 대한 민생문제를 해결할 공전제로 백성에게 고루 나눠 주자는 토지개혁안의 전제(田制)와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 법제와 인제가 조화를 이뤄 백성이 편안하고 잘 살도록 하자는 공거제(貢擧制)400여 년 전의 반계의 실학사상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다. 지방마다 덕망 있는 선생을 선정하여 인재를 양성케 하고 교육제도를 혁신하여 한양의 최고 학부인 태학(太學)150명 입학생을 각 지역별로 분배하여 50%만 내사생(졸업정원제)을 국비생으로 양성하여 매년 수료생 중 인성을 갖춘 덕망 있는 인재 35명을 선발하여 조정 관리로 정하는 공거(貢擧)를 하자는 것이다. 조선후기 사회개혁안은 이율곡의 성학집요에 영향을 받아 율곡은 형이상(形而上)의 도()를 정책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수준이라면, 반계는 형이하(形而下)인 기()로 반계의 정제(政制)는 정책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도화 한 것이다. 성리학에서 이어진 실학의 계보는 율곡의 성학집요,성호의 곽우록(藿雨錄),담현의 임하경륜(下經綸),다산의 경세유표(經世遺表) 로 이어진다. 반계수록은 그가 죽은 지 백년 만에 높이 평가 받아 영조461770년에 간행되어 후세 학자, 정치가들로 하여금 연구 발전 시켰다. 벼슬을 마다하고 농민과 함께 농사도 짓고 바다에 나가 고기도 잡아 실생활에 대한 행함을 보여준 한마디로 ‘실사구시’ 는 정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로 이어져 베트남의 영웅 호지명이 탐독할 정도로 백성을 위한 민본사상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자기 배만 채우려는 몰지각한 위정자들과 성적위주에 의한 인성교육을 져버림 잘못된 교육제도에 반계 유형원의 교선(敎選)을 적용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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