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남원 주천 큰 고리봉(1,305.4m)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5/28 [14:35]

백두대간의 남원 주천 큰 고리봉(1,305.4m)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5/28 [14:35]

▲큰 고리봉서 본 지리산  © 새만금일보


 <개요와 자연경관>
  고리봉, 환봉의 별칭을 가진 큰 고리봉은 옛적에 고깃배를 매었던 산이라고 한다. 석기시대에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고 고기잡이를 했기 때문이다. 운봉읍 주촌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바다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라서 고유지명을 배말 또는 뱃몰로 불렀는데 한자명인 배 주舟를 쓰는 주촌舟村으로 고쳤다. 그리고 마을이 배의 한복판에 있어 항상 배의 뒤를 돌아보며 배의 안전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배의 꼬리부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종리望終里라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남원부 때는 고리봉이란 명칭을 가진 산이 세 개나 있었다. 큰 고리봉(1,305.4m)은 산이 높으며, 석기시대에 운봉이 호수로 있을 때 고깃배를 매었던 산이다. 만복대 북쪽에 위치해서 제2만복으로도 불리는 작은 고리봉(1,248.0m)은 옛적에 남원 땅에 속했을 때 홍수가 나면 배를 매었던 산이다. 보련산, 골회봉, 환봉 등으로 불리는 금지면의 고리봉(701.1m)은 설악산 용아장성을 방불케 하는 암릉에 옛적에 소금 배를 매었던 곳이다. 

 

▲고리봉에서 본 산내면과 지리산  © 새만금일보

 

조선시대 남원부 때는 고리봉이란 명칭을 가진 산이 세 개나 있었다. 큰 고리봉(1,305.4m)은 산이 높으며, 석기시대에 운봉이 호수로 있을 때 고깃배를 매었던 산이다. 만복대 북쪽에 위치해서 제2만복으로도 불리는 작은 고리봉(1,248.0m)은 옛적에 남원 땅에 속했을 때 홍수가 나면 배를 매었던 산이다. 보련산, 골회봉, 환봉 등으로 불리는 금지면의 고리봉(701.1m)은 설악산 용아장성을 방불케 하는 암릉에 옛적에 소금 배를 매었던 곳이다. 
 

▲큰 고리봉 오름길  © 새만금일보


 <<남원지>>에는 “고리봉은 일명 환봉이라고도 하며 산내면과 운봉읍, 주천면, 산내면과 경계에 있다.”고 나와 있다.
  <<신운성지>>에는 “일명 환봉環峯으로 불리는 고리봉은 큰 고리봉과 작은 고리봉이 있다. 큰 고리봉은 산내면과 운봉읍, 주천면과의 경계에 있으며, 작은 고리봉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속해 있다. 고리봉하면 큰 고리봉을 말하는데 일명 환봉이라 하며, 가을철 억새의 노란색과 은회색 그리고 참나무 잎의 주황색 빛이 장관을 이룬다.

정령치에서 만복대에 이르는 능선의 동쪽사면은 매우 완만하게 오목한 평탄지가 있다. 작은 고리봉은 1,248m다. 옛날 산봉우리에 박혀 있는 고리에 배를 매었다고 전해온다.
  큰고리봉은 백두대간에서 지리산 자락의 첫 봉우리가 되는 산으로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동쪽으로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과 지리산에서 해를 가장 먼저 본다는 덕두봉을 나누는 분기점이다. 백두대간이 노치마을에서 농경지와 도로로 이어지다가 주천면 고기리에서 고리봉으로 뻗어 가면서 비로소 지리산의 산줄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큰 고리봉서 본 지리산 주능선  © 새만금일보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경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의 우리전통지리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큰고리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뉘고 ,백운산, 월경산을 지나 남원 땅의 삼계봉 들어서면 동쪽으로 연비지맥을 분기한다. 그리고 봉화산, 아막성산, 시리봉, 산불산, 무덤산, 고남산, 방아산, 여원치, 주지봉, 갓바래봉, 수정봉을 지나 덕운봉에 닿는다. 덕운봉에서 서쪽으로 구룡지맥을 나뉘고. 노치마을 지나 큰고리봉을 일구어 놓고 정령치와 만복대를 지나 지리산으로 뻗어간다. 큰고리봉의 물줄기는 남쪽은 구룡계곡과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합수되고, 동쪽은 만수천과 람천을 통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임천과 남강으로 흘러간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운봉읍 주촌리, 주천면 고기리, 산내면 덕동리와 경계를 이룬다. 
   

▲큰 고리봉에서 본 운봉  © 새만금일보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큰고리봉의 북쪽은 깃대봉과 세걸산 너머 바래봉, 동쪽은 점등산, 동남쪽은 투구봉과 반야봉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지리산 연봉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남쪽은 정령치와 만복대, 그리고 작은 고리봉, 서쪽은 영제봉을 비롯한 견두지맥의 산들이 다가온다.

 

<주변문화와 인문지리>
 <<한국지명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등으로 살펴본 큰고리봉 주변 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큰고리봉 북쪽에 위치한 운봉읍 주촌리는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지역을 배말 또는 주촌이라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원평元坪, 주촌舟村 및 남원군 상원천면上元川面 노치盧峙 일부를 병합하여 주촌리라 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운봉읍 주촌리가 되었다. 주촌리에는 배말, 원평 등이 있다.


 고려 현종 5년(1014) 연안 이씨와 김해 김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 등으로 몇 차례 전란을 겪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지리산 빨치산 잔병과 국ㆍ군경 토벌대 사이의 기습과 토벌작전으로 마을은 온통 잿더미가 되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각지로 흩어졌다가 1951년 3월경부터 하나둘 모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다시 마을을 이루었다.
 본래 마을 이름은 배몰 또는 배촌으로 지형이 바다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기 때문이다. 또 마을이 배의 한복판에 있어 항상 배의 뒤를 돌아보아 배의 안전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배의 꼬리부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망종리望終里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석기시대 때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고 고기잡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배말 또는 뱃몰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배 주舟를 쓰는 주촌舟村이 되었다.

 

▲큰 고리봉서 본 만복대와 작은 고리봉  © 새만금일보

 

<문화유적과 명소>
 [운봉고원 제철유적지]
  남원시 운봉고원 일대에서 백제 또는 가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2012년 11월 군산대박물관과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남원 운봉고원 일대 학술조사에서 운봉읍 산덕리ㆍ고기리, 산내면 덕동리 등 5개소에서 집터, 제련로의 흔적과 광범위한 철 슬래그편(쇠똥) 흔적을 확인했다. 발견 장소는 백두대간과 지리산 줄기의 계곡부에 위치했다.
특히 남원 산내면 덕동리에서 발견된 '하점골 제철유적'은 철 슬래그편 뿐 아니라 잘게 부순 철광석 더미와 제련로 등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제철공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백두대간 큰 고리봉  © 새만금일보

 

 

<산행안내>
o 1코스 : 정령치-큰 고리봉-세걸봉·세동치·부은치·바래봉-용산리주차장(14.0km, 6시간)
o 2코스 : 성삼재-작은고리봉-(6km)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가재마을(12.0km, 6시간)

<교통안내>
 o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 IC -인월-60번 도로-산내면 대정삼거리-861번 도로-달궁삼거리-정령치/ 달궁삼거리-성삼재
 o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 IC-24번 국도-요천삼거리-운봉-60번 도로-고기리 삼거리-정령치-성삼재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김정길의 호남명산 순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