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견두지맥의 남원 노적봉露積峯(120.0m)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6/11 [14:20]

백두대간-견두지맥의 남원 노적봉露積峯(120.0m)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6/11 [14:20]

▲ 남창 들녁서 본 용의 형상과 노적봉  © 새만금일보


<개요와 자연경관>
  노적봉은 늙은 용의 승천하는 형국의 산줄기에 곡식을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솟아오른 남창의 주산이다. 풍수지리상 용이 남창(용강)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이다.
 김철 전 남원시의원이 고증하는 늙은 용의 형상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남창마을 입구인 서쪽은 용의 꼬리, 마을 뒤는 용의 몸통과 용의 목 부분, 마을 동쪽 농협창고 앞에서 남쪽으로 약간 뻗어 나온 부분이 용의 머리에 해당된다. 용이 몸통을 이루며 마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머리를 틀었다. 용의 목 부분에서 약간 동쪽으로 뻗어 나온 남창마을 표지석이 있는 뒷산이 부분이 노적봉이다. 용은 물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용꼬리에 해당하는 지점에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 노적봉 아래 남원부의 남창(창고 터)  © 새만금일보

 

노적봉 건너편에는 옛적에 서당이 있었던 서당마을이 있는데 뒷산이 쥐를 닮은 쥐산에 있는 쥐가 수지천의 바위를 건너 노적봉을 먹으러 오는 형상이다. 그런데 수지천에 모래가 쌓여서 바위를 덮으면 쥐가 건너오지 못해서 노적봉의 곡식을 보전할 수 있었다. 남창마을 앞에는 풍요롭고 기름진 남창들녘이 있다.
 남창들녘의 조선시대 남원에는 동. 서. 남. 북의 네 군데에 조세보관창고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남창南倉 노적봉이 위치한 남창마을에 있었다. 

 

▲ 남창효의열각 황씨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 총람>>에는 “수지면 남창리 상동산 남쪽에 있는 산이다. 산정리 가정 서쪽에 있는 산으로 노적같이 생겼다.”고 나와 있다.
 <<남원의 마을 유래>> “용강龍岡마을은 늙은 용이 하늘을 오르는 형국이라서 용강이라 했는데 1880년경 남원군 조세보관창고인 남창南倉이 있어 남창으로 바꿨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수지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건립비문>에는 “목전에 보이는 노적봉露積峰은 수지면의 활력이요. 기운이다.”고 쓰여 있어 혼선을 초래한다. 김철 전 남원시의원과 수지면사무소 유일섭 계장에 의하면 “수지면사무소에서 눈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노적가리처럼 보일 뿐이며, 문헌에 등장하는 노적봉은 남창과 용강龍岡마을에 위치한 산이 맞다”고 말했다.

 

▲ 남창마을회관  © 새만금일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노적봉이 위치한 남창리는 조선시대(1880년) 남원군의 곡식을 저장했던 남창이 있었던 곳이라서 노적봉의 의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남창의 한자명을 창고 창倉이 아닌 푸를 창蒼으로 바꿨다고 한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용강의 한자명이 산등성이 강岡과 굳셀 강剛을 혼용하고 있는데 산등성이 강岡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등에는 표기되지 않았다. <<한국지명총람>>과 남창마을 마을회관 건립비문에는 노적봉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노적봉은 대부분 전쟁 때 적군을 속이기 위해 노적가리처럼 곡식을 쌓아 놓은 형상이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 최명희 문학관의 뒷의 노적봉, 임실군 신평면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노적봉,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이 대표적이다.

 

▲ 남창 용머리 형국  © 새만금일보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경 여암 신견준이 편찬한 우리전통 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노적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우리 민족정기가 서린 백두산을 출발한 백두대간이 전북 땅 무주를 지나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뉘어 놓는다.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은 남진하며 백운산, 월경산, 삼계봉, 봉화산, 매봉, 아막성산(모산), 시리봉, 산불산, 무덤산, 고남산, 방어산,  수정봉, 덕운봉, 고리봉, 정령치를 지나 천복대에 닿는다.

 

▲ 남창노적봉  © 새만금일보


  천복대에서 견두지맥은 서쪽으로 뻗어 가며, 요강바위, 안산, 다름재, 영제봉, 국수봉, 염재봉, 솔봉, 숙성치봉, 가마봉, 시루봉, 앞밤재봉, 밤재를 지나 황제봉에 닿는다. 견두지맥 황제봉에서 서쪽으로 가지 친 황제분맥은 옥녀봉(주천), 상주산(, 옥녀봉(송동) 갈림길에서 남북으로 두 갈래를 친다. 북쪽 산줄기는 옥녀봉(송동), 비구봉, 남취산을 형성한다. 옥녀봉 갈림길에서 남쪽 산줄기는 원통산, 가마봉을 지나 금제봉(금처봉)에 닿는다. 금제봉에서 북서쪽은 염재봉으로 가고, 남서쪽 산줄기는 노적봉을 일으킨다. 노적봉의 물줄기는 수지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합류한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다.

 

▲ 서당마을 쥐산 노적봉 건너마을  © 새만금일보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노적봉의 북쪽은 용투산 너머로 용두산과 수덕봉이 다가온다. 동쪽은 백두대간 천복대에서 뻗어 내려온 견두지맥의 개머리형국인 견두산이 지켜준다. 남동쪽은 견두지맥의 천마산과 깃대봉, 서쪽은 천황지맥의 천장군묘봉과 고리봉이 에워싸고 있다.

 

▲ 용머리산과  © 새만금일보

 

<주변문화와 안문지리>
 <<한국 지명 총람>>, <<한국 지명유래집>>등으로 살펴본 노적봉의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노적봉을 품은 수지면 남창리는 본래 남원군 수지면 남창리지역으로 용강 또는 남원부의 조세보관 창고인 남창이 있어 남창南倉이라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두동면 세전리를 병합하여 남창리라 하였다. 1990년 남창리를 남창과 용강으로 분리하였다. 1995년 1월 남원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가 되었다.

 

▲ 남창마을 표지석  © 새만금일보


 남창南倉마을은 1610년경 해주 오 씨가 지세가 좋은 현 위치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1820(순조 20)년경 홈실 박 대감이 정착하고, 오 씨, 황 씨, 김 씨가 집단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원래 마을의 지세가 늙은 용이 하늘을 오르는 격이라 하여 용강이라 하였다. 그러나 1880년경 남원군 조세보관창고인 동, 서, 남, 북창 중 이곳 남쪽 창고인 남창南倉이 있어 조선 말엽에 남창으로 바꿨다. 1990년에 또 다시 남창과 용강 마을이 행정리로 분리되었다.

 

▲ 노적봉  © 새만금일보

 

<문화유적과 명소>
 [수지미술관]
  2015년 폐교된 수지남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남원 시민과 전라북도 도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문화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설립자인 박상호 화백이 지리산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 등을 화폭에 담아 관람객들에게 빼어난 자연경관과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약 1,000여 점에 이르는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남창 노적봉 답사 필자, 김철, 안상현, 남창 이장 등  © 새만금일보


<산행안내>
  o 남창리-노적봉-남창리(3,0km, 1시간 30분)

<교통안내>
o 순천완주고속도로 서남원 IC-730번 도로-송동면 영동리(동쪽)-5번 도로-수지면 남창리
o 광주대구고속도로-남원분기점(JC)-서남원 IC-730번 도로-송동면 영동리(동쪽)- 5번 도로-수지면 남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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