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민중과 친구가 된 예수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1/11/19 [09:16]

가난한 민중과 친구가 된 예수

새만금일보 | 입력 : 2021/11/19 [09:16]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것은 1884년 미국공사 *알렌을 통하여 고종황제의 시의(侍醫)로 전파되기 시작한지 올해로 137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당시 조선 인구의 60%가 종의 신분이었고, 소위 양반들은 백정,갓바치,점안이 등 상놈들과 힘없는 농민을 착취하고 소나 말처럼 부려먹고 개처럼 학대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 사람을 아프리카의 흑인보다 좀 나은 미개인이라고 본국에 타전했다. 연간 20-30톤의 많은 금을 노획해 간 일제와 그리고 미국인들이 금광맥을 건들지 말라 했는데 노다지란 말이 이때 탄생했다 한다. 선각자들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1894년 갑오개혁과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벌떼처럼 일어났다. 두 여종을 며느리와 딸로 삼은 동학교주 최제우(崔濟愚)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 즉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사상은 상놈도 대우받는 인간평등의 새로운 나라 천지개벽을 바라는 동학교도 300만 명 태반이 천대받던 가난한 민중들이었다. 서양의 기독교는 남녀평등을 내세운 선진 문물을 보급하였는데 예수만 믿으면 천대받던 상놈들도 죽어 천국에 간다는 말에 상놈들이 예배당에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다. 종의 제도란 악법을 제정한 것은 성군이라던 세종대왕 때 만들어 졌으며, 성리학의 대가라 추앙받던 퇴계 이황()의 노비만도 300명이나 되었다 한다. 조선개국 후 200년 동안 왕권에만 치우친 훈구대신과 조정은, 임진왜란 때 왜군 16만이 조선 땅을 초토화 시켰는데 관군은 고작 8000명으로 선조와 대신들은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하니, 상놈과 종들은 어차피 망할 나라니 왜놈 편에 서자며 종의 문서가 보관된 장예원()을 불태웠다. 다행히도 이순신장군이 호남과 바다를 막았으며, 유성룡의 면천법(免賤法)에 왜놈을 무찌르면 신분상승을 해준다 하니 상놈들이 의병에 가담하여 구국운동에 앞장섰는데, 부안의 명기 이매창의 정인 천민(賤民)출신 유희경도 그 중의 하나다. 양반과 사대부들은 제 목숨 숨기기에 바빴고 상놈과 평민들이 국난에 희생을 당하면서 의병에 가담했다. 영원할 것 같은 몽골의 대원제국도 백성을 못살게 착취하다가 천민출신인 홍건적의 수장 주원장(朱元璋)에게 망했다. 그 뒤 명나라와 청나라가 망한 것도 백성은 안중에 없고 제후와 탐관오리들의 착취로 망했다. 청말 서태후의 사치가 극에 달하여 반찬이 128가지로 농민 1만 명이 먹을 비용이었다 한다. 군함을 구입했는데 대포에 콩알이 장착되어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망 당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때 *야소교당에 몰려든 상놈들로 하여금 선교 100년 만에 지금의 한국개신교는 국민대비20%, 1000만 명을 자랑하는 기독교인이 조국근대화와 개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기독교는 유물주의와 급속한 세속화로 추락하여 현재 국민대비 10%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로는 황금만능주의로 새로운 유산계급이 생겨나, 하나님보다 돈이 우상이 되었다. 두 번째로 수 만 명의 패거리집단 대형교회는 금권과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 정종(政宗)일치 구교의 타락상을 재연하고 있다. 부동산전문 목사까지 둔 부동산투기의 원조 서울의 M교회의 자산만도 9조원 이라니... 돈 많은 대형교회마다 불법세습을 일삼는가 하면 교회는 돈 버는 사업장으로 변했다. 재개발에 무리한 돈을 요구하며 반기를 든 ‘빤쓰목사’ 전광훈은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 는 괴변과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아(異端兒), 국민이 뽑은 일국의 대통령을 종북, 좌빨이라며 나라를 김정은에게 들어 바쳐 공산화시켜 기독교를 말살하려 한다면서 문 대통령을 처단해야 한다는 등 인격모독과 저주를 일삼고 있다. 출산저조로 교인이 자연감소 하는데도 무리한 빚을 내어 큰 예배당이나 지어 ‘예수 없는 예수교회’는 현대판 우상, 바벨탑을 쌓고 회칠한 무덤으로 변질되고 있다. 95%가 기독교인이었던 유럽은 출석교인이 1%로 대형교회당을 운영을 못해 술집으로 팔리고 관광 상품으로 전락, 주일이면 텅 빈 공동화(空洞化)상태다. 세상 양심의 마지막 보루(堡壘)라던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돌을 맞아 ‘개독교’라 놀림 받을 까 세상 사람들이 더 염려하고 있다. 많이 가진자, 기득권자가 나눌 줄 모르면 사회주의는 자연 발생한다는 *아인슈타인이나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재음미 해볼 일이다. 서로 떡을 떼고 필요한 물건을 서로 나눈다는 공동체를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 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비유했다. 예수는 고아와 과부와 병들고 천대받던 상민들과 가난한 민중을 친구로 삼았다. 예수는 같은 동족인 기득권 유산계층으로부터 지금의 좌빨, 빨갱이로 몰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우리나라 개신교가 기득권 보수정치집단과 야합하며 개혁하지 않고서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한 한국교회가 예수를 두 번 못 박고 있지 않는 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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