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성씨순례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청주곽씨(淸州郭氏)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6/02/25 [00:57]

시조 곽 원(郭元)의 선조는 신라 헌강왕(제49대왕,재위기간:875-886) 때 시중을 역임한 곽 상(郭祥)이다. 그는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문장이 뛰어나 동방의 석학인 최치원과 교분을 나누었다.

후손인 곽 원(郭元, 시호는 문성)이 고려 성종 때 등과하여 형부상서를 역임했다. 곽 원의 10세 후손인 곽연준(郭延俊, 시호 충헌)은 개성부윤 등을 역임하고 청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청주에 살면서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곽 원은 996년(고려 성종 15) 문과에 급제하고 현종 때 사신으로 송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부시랑과 우간의대부, 중추원사, 참지정사 등을 지냈다. 그의 손자인 곽상은 수사공(守司空)에 올랐다.

곽 여는 고려 예종과의 세자 때 친분으로 순복전(純福殿)에 있으면서 자주 왕과 담론을 나누었다. 예부원외랑이 되었다가 사직하고 금주(金州)의 초당으로 돌아가자 왕이 성동(城東)의 약두산(若頭山)에 산재(山齋)를 짓게 했다. 허정재(虛靜齋)로 사액(賜額)한 후 왕이 산책을 나오면 들러서 함께 시를 읊고 즐겨 세칭‘금문우객(金門羽客)’으로 불리었다. 곽여가 죽자 왕은 정지상을 시켜‘산재기(山齋記)’를 쓰고 비를 세워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급제한 곽예는 문충공 곽탄의 현손이다. 곽예는 충렬왕 때 좌승지와 국자감의 대사성을 거쳐 지밀직사사에 이르렀다. 감찰대부로 성절사(중국 황제의 탄일을 축하하러 보내던 사절)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오던 길에 병사했다.

교서랑 곽운진의 아들 곽 인은 문과에 장원하고 문한서(文翰署)에 속하면서 문장과 충성심을 인정받아 선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곽 인의 손자 곽충수는 헌납을 거쳐 대간에 올라 권신 조일신의 비리를 탄핵했다. 후에 형부시랑을 지냈다. 평장사 곽 침의 아들 곽 추는 조선이 개국된 후 대제학에 이르렀다.

조선개국 원종공신인 곽충보는 장사길과 함께 문화와 영녕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다. 곽열은 선조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지냈다. 당시 외숙인 김자점이 권세를 남용하자 이를 극간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내려왔다. 그의 아들 곽희태는 66세에 등과하여 87세까지 벼슬에 머물렀다.

영조의 스승이었던 곽시징은 집의 곽지흠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 송준길과 송시열이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무고함을 상소했다. 곽시징은 자신의 스승이 사사(賜死)되자 태안으로 내려가 두문불출하며 학문에만 전심했다.

독립운동가 곽재기(1889-1953)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만주에서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이성우와 함께 국내에 들어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체포되어 6년간 복역했다. 1963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단장을 받았다.

곽한탁, 곽태종 등도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해방과 더불어 정계에서는 곽의영이 충북 괴산, 청원군수를 거쳐 1950년 청원 을구에서 제2, 3, 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연3선 의원을 지냈다.

현대 인물은 곽수업(총경, 경찰서장, 시장), 곽종석(여주, 양주군수), 곽완영(감사원감사관), 곽영식(체신부서기관), 곽조균(경제학박사, 재미대학교수), 곽한식(경제학박사, 서울대교수), 곽윤직(법학박사, 서울대교수), 곽의영(충청실업전문대교수), 곽노의(서울교대교수), 곽경로(의학박사, 소아과병원장), 곽태로(의학박사), 곽의석(여주여자고등학교장), 곽우영(교통부서기관), 곽노훈(내무부서기관), 곽영식(우체국장), 곽금영(갑천면장), 곽정현(11대국회의원), 곽철종(육군준장), 곽태신(육군대령, 중앙정보부청주, 제주분실장), 곽노철(육군소장), 곽만영(육군준장, 청주직업훈련연수원장), 곽노환(강릉MBC 방송국장), 곽효석(The Korea Times 편집국장), 곽노환(이학박사, 미국캔저스대교수), 곽노섭(경제학박사, 재미대학교수), 곽순명(인천신흥중학교장), 곽한철(서울고등학교장), 곽노준(변호사), 곽하신(변호사), 곽재영(재일본, 산일주식회사사장), 곽재권(재일본, 대협건설사장, 프리마호텔회장), 곽재근(고려가스공업사장), 곽한봉(새청주약국장), 곽근(금보사사장, 전국금은상조합장), 곽노권(한미금형사장), 곽열규(조방물산사장), 경일염색공업협동조합이사장), 곽우영(청원물산사장), 곽노흥(염광건설-전자사장)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간매파, 주천파, 제천파, 청풍파, 신대파, 봉미파, 오감파, 문호파, 원곡파, 성우파, 진사공파, 호은파, 고청파, 백동파, 방목파, 회암파, 성촌파, 신계파, 금평파, 금동파, 행당공파, 대구파, 보은파, 부강파, 청주파, 안협파, 당진공파, 유왕동파, 적성파, 연기파, 부평파, 장단파, 충주파, 여주파, 강화파, 결성파, 옹동파, 덕전파, 장수파, 호덕파, 장성파, 영암파, 삼가파, 수철파, 화산파, 안양파, 양담공파, 처사공파, 호재공파, 풍기공파, 문경파, 승지공파, 감찰공파 등이다.

본관 청주(淸州)는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청소재지이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685년(신라 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청주(淸州)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995년(성종 14)에는 절도사를 두었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 1018년에 전국에 8개 목(牧)을 설치함에 따라 다시 청주목이 되고,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청주는 주(州)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목을 유지하면서 충청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651년(효종 2)에는 충청도의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되어 충청도의 군사적인 중심지도 겸하였다. 그러나 역모사건 등으로 1656~1667년, 1681~1689년, 1804~1813년, 1826~1834년, 1862~1871년 등 여러 차례 서원현(西原縣) 등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청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충청북도 청주군이 되었다. 1906년 관찰사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함으로써 비로소 충청북도의 주도(主都)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청주면(淸州面)이라 개칭하였고, 1931년에는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읍으로, 1946년에는 청주부(淸州府)로 승격하였다. 1995년 동부·서부 출장소가 동부는 상당구(上黨區)로, 서부는 흥덕구(興德區)로 승격하여 현재 상당구·흥덕구 2개 구가 있다.

집성촌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간매리,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서원리,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충북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 경남 합천군 대병면 유전리 등이다. 경기도 여주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성종 때의 문신인 18세 곽승진(郭承振,1418~1477)이다. 그는 어느 해 여주군 강천면 간매촌(看梅村)으로 입향했다. 그는 어느 해 소를 타고 국내의 명승지를 유람하다가 이곳 여주군 강천면 간매촌(看梅村)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곳에서 소가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곽승진이 그 자리에 집과 누각을 지은 후‘존양(存養)’이라고 이름을 짓고 살게 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40명이 있다. 문과 14명, 사마시 25명, 역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주곽씨는 1985년에는 총 5,670가구 24,466명, 2000년에는 총 5,601가구 18,21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 수는 비슷하다. 그러나 인구는 약 6천여 명이 줄어들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572명, 부산 1,013명, 대구 751명, 인천 769명, 경기 3,814명, 강원 1,461명, 충북 2,219명, 충남 3,374명, 전북 725명, 전남 1,873명, 경북 776명, 경남 960명, 제주 144명이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4,641명, 부산 481명, 대구 349명, 인천 1,036명, 광주 121명, 대전 683명, 울산 165명, 경기 4,576명, 강원 1,066명, 충북 1,994명, 충남 1,908명, 전북 170명, 전남 ·162명, 경북 397명, 경남 430명, 제주 39명이다. 충북, 충남, 강원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6/02/25 [00:5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