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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최씨(興海崔氏)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6/07/12 [00:40]


 시조 최호(崔湖)는 고려 공민왕조에 문과에 올라, 공민왕 16년 이후 나라에 공훈이 있어 삼중대광문하시중 삼한벽상 공신이 되고 곡강부원군(曲江府院君)에 봉해졌다. 곡강(曲江)은 흥해(興海)의 별호다. 그가 죽은 뒤 곡강서원에 향사되고 자손들이 그곳에 세거하게 되어 관향을 삼았다.
 그런데 가 파 사이에 시조에 대한 주장이 달라, 기유보(己酉譜) 간행에 즈음하여 종문 사이의 화친과 친목을 위해 곡강부원군 최호를 시조로 삼기로 통일하였다. 이를테면 무인보(戊寅譜)나 신묘보 그리고 갑오보 서문에는 최씨는 유리왕 때 최씨로 사성된 뒤 고려 인종 때 상서좌복야를 지낸 완산군 최균을 시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의 소목이 확실치 않아, 완산군을 비롯하여 세대를 고증키 어려우므로 곡강부원군을 시조로 한다고 분명히 하였다. 그의 6세손으로 직제학을 역임한 최연(崔淵)을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경북 영일군 의창면(義昌面) 남송동(南松洞)에 시조 최호(崔湖)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시조에 대한 제사가 끊어졌다가 철종 14년(1864년) 23세손 계항(桂恒)이 향화(香火ㆍ문중제향)를 잇게 되었다. 인근 서원마을에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명당으로 소문난 최호(崔湖)의 묘 앞에는 묘를 찾지 못한 부인 황씨(黃氏)의 단비(壇碑)가 있다. 
 최호의 아들 최근은 도첨의를 지냈고, 6세손 최연은 세종조에 문과에 급제, 사성(司成)을 지냈으며 벼슬이 직제학까지 이르렀다. 그의 아우 최징도 문과에 급제하여 판서를 지냈고, 최징의 아들 최효순은 유일(遺逸)로 장령을, 그의 손자 최숙하 역시 유일(遺逸)로 지평을 역임했다.
 그리고 최여실의 11대손인 최기대가 진사를 지냈고, 15대손 최천익은 시문에 능했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팔개(崔八凱)가 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부산진 전투에서 왜군과 격전 중에 전사했다. 그의 동생 최팔원(崔八元)은 1585년 문과에 급제하여 봉사를 거쳐 박사에 재임 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형 팔개와 함께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여 흥해최씨의 가문을 빛냈다.
 현대 인물은  최기명(초대중앙종친회장), 최정호(제2대중앙종친회장), 최인봉(제3대중앙종친회장), 최문달(제4대중앙종친회장), 최성욱(국회의원), 최헌식(이사관), 최형찬(서울대교수), 최영식(교육자), 최효식(동국대교수), 최부병(경희대교수), 최규식(대림이사), 최성달(대경상무이사), 최철규(대령), 최경달(대령), 최효달(대령), 최재구(중령), 최정병(인천전문대교수), 최의민(교육자), 최의동(부시장), 최의정(공학박사), 최상문(교수발명상수상), 최재원(정치학박사), 최형달(의학박사), 최영철(의학박사), 최경달(의학박사), 최재형(미국예스란트대학총장), 최종권(중령), 최미식(중령), 최영식(중령), 최의락(중령), 최의영(중령)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1989년 현재 종친회 연락처는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대리 173번지 최현식씨 집이었다. 당시 종친회장은 최문달, 부회장 최한명, 총무 최익수, 최현식, 최성도, 재무 최용준, 간사 최응곤, 최정용, 감사 최종식, 최의영씨 등이었다.
 주요파는 김해파(金海波)ㆍ밀양파(密陽派)ㆍ거창파(居昌派)ㆍ자인파(慈仁派)ㆍ경산파(慶山派)ㆍ나주파(羅州派)ㆍ대구파(大邱派)ㆍ사량파(思良派)ㆍ청도파(淸道派)ㆍ노산파(魯山派)ㆍ시흥파(始興派)ㆍ합천파(陜川派)ㆍ이천파(利川派)ㆍ하대대파(下大垈派)ㆍ서울파ㆍ양평파(楊平派) 등이 있다. 곡강 최씨(曲江崔氏)와는 동원분파(同源分派)이다.
 본관 흥해(興海)는 경상북도 포항시(浦項市) 흥해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삼한시대에 다벌국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때에는 퇴화군(退火郡)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창군(義昌郡)으로 개칭되었고 신라 말기에는 남북미질부성(南北彌秩夫城)이라고도 불렸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남북미질부성을 다시 합쳐 흥해군(興海郡)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에 경주부(慶州府)에 속하였다가,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었다. 1367년(공민왕 16)에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고 곡강(曲江)·오산(鰲山)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흥해군으로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흥해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흥해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흥해군이 6개 면으로 분면되어 폐지되고 영일군(迎日郡)에 병합되었다. 1956년 흥해면과 곡강면을 의창면(義昌面)으로 통합하고 1973년 의창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가 1983년 의창읍이 다시 흥해읍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95년 영일군이 포항시에 병합되었고 북구로 신설되어 통합되었다.
 집성촌은 경기도 안성시 삼주가면 용월리, 경기도 안성시 이죽면 용설리,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 경남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 경남 밀양시 초등면 명성리,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경북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경북 경산시 용성면 곡신동, 경북 청도군 청도읍 거연동 등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의 입향조 최자순(崔自淳)은 최호 6세손으로 성균관 대제학을 지낸 최연(崔淵)의 아들이다. 최연(淵)은 세종대왕 이십년 무오년에 성균관 생원에 장원으로 뽑혔고 성균관 직강사성이 되었다. 그 뒤 고령현감과 대구와 곤양 · 흥해군수를 지냈고 홍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최연은 충주에서 김해로 이주(移住)해 살았으며 김강호숙자(金江湖淑滋) 즉 점필재 김종직의 부친과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친하게 지냈다. 아들 최자순은 종사랑을 지냈으며 김해로부터 이곳 청도로 이주했다. 유곡리(柳谷里) 문전(門前) 봉란산(鳳卵山) 산위에 작은 누각을 짓고 누각 아래에 연지(蓮池)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오리(五里)나 된다. 유곡리는 지금 유등리이다. 최자순은 아들 하나와 딸이 하나 있다. 딸은 고성인 진사며 찰방을 지낸 이육(李育)에게 시집을 갔다. 입향지인 유등리에는 현재 철성이씨(鐵城李氏)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흥해최씨는 청도읍 거연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1996년 조사 당시 청도읍 거연리에 28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며,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70가구 17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청도읍 운산리에는 흥해최씨 재실인 용견재가 건립되어 있다. 거창 입향조(居昌入鄕祖)는 곡강부원군의 15세인 최계동(崔繼潼)이다. 문과급제, 세종 24년(1441년)에 성균관 진사가 되고, 1451년 증광시(增廣試)에 오르셔 영산현감(靈山縣監), 함흥판관(咸興判官),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지내고 태상정(太常正)에 이르렀다. 만년에 당시 대유학자인 점필제(?畢霽) 김종직(金宗直)과 도의교(道義交)하였으며 합천군수가 되면서 밀양에서 거창 가조 남면 평촌(坪村, 들마)으로 이주했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 최숙강(崔淑姜)은 밀양에 거주하고 둘째인 최숙량(崔淑梁)은 가조에 거주했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 58번지 오도산 아래 수포대에 위치한 모현정은 동방 5현에 속하는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과 평촌공(坪村公) 최숙량(崔淑梁)이 함께 학문을 했던 곳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흥해최씨는 1985년에는 총 2,293가구 9,189명, 2000년에는 총 3,610가구 11,47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천4백여 가구, 2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074명, 부산 1,317명, 대구 1,222명, 인천 163명, 경기 1,274명, 강원 105명, 충북 80명, 충남 92명, 전북 13명, 전남 54명, 경북 1,245명, 경남 1,542명, 제주 8명이다. 서울, 경남, 부산, 경기, 경북, 대구 지역에 많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051명, 부산 1,504명, 대구 1,473명, 인천 287명, 광주 16명, 대전 127명, 울산 315명, 경기 2,192명, 강원 146명, 충북 159명, 충남 105명, 전북 34명, 전남 28명, 경북 1,502명, 경남 1,523명, 제주 17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기, 서울, 경남, 부산, 경북, 대구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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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12 [00:40]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