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식 핵문제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6/30 [15:03]

리비아식 핵문제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6/30 [15:03]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리비아식 해법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리비아식 핵 해법이란 리비아가 지난 2004년에 단행했던 것 같이 자진해서 먼저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포기하고 나중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방식을 말한다.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 등 핵무기 제조 장치 들을 봉인해 미국 테네시 오크리지 핵무기 제조창으로 이송해 해체한 방식이다. 그리고 당시 리비아의 카디피 정권은 그대로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리비아 핵폐기 모델은 극비리에 핵개발을 추진하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미국 등 서방의 권고에 따라 평화적으로 핵을 폐기한 것을 의미한다. 리비아는 조건 없이 핵을 폐기한 뒤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았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자진해서 핵 등 대량 살상 무기 포기 선언을 했다. 그리고 모든 관련 시설을 국제사찰단에 공개한 것은 물론 그 관련 장비를 모두 미국으로 보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2004년 봄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부분 해제했다. 2004년 6월에는 리비아와 외교관계 정상화를 선언했다.

리비아가 핵포기 선언을 하고 불과 6개월 만에 미국이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더불어 리비아와 외교관계까지 복원한 셈이다. 당시 리비아는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고 미국은 이런 리비아를 핵폐기 단계까지 끌어내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다.

핵 폐기 협상 과정에서 영국은 미국과 리비아 사이를 중재했고, 카다피의 3남을 통해 카다피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리비아는 2003년 3월부터 9월까지 미국과 비밀리에 협상을 벌였고, 양국은 그해 12월 대량 파괴 무기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핵 폐기 선언이 있기까지 9개월간 리비아에는 미국과 영국 핵 전문가들이 10여 차례 들어갔다. 모든 핵 물질과 핵 장비, 그리고 핵 프로그램을 조사했다. 핵 폐기 선언 직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까지 받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2005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IAEA의 사찰을 받았다. 카다피는 원심분리기 등 리비아의 핵무기 제조 장비와 관련 서류 등 총 25t 분량을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기는 것에 합의했다.

리비아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폐기 선언은 그해 10월에 이뤄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대폭 완화했다. 연락사무소 설립에 이어 리비아에 대사관을 설립하는 등 국교 정상화를 이뤄나갔다. 종국에는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미국은 리비아식 문제 해결 방식을 북한 핵문제에도 적용시키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리바아처럼 북한도 먼저 자진해서 핵을 포기하면 그에 대한 미국의 보상은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게도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자 한다면 리비아와 같이 단호하고 신속하게, 미련 없이 깨끗하게 버리라는 주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주장해 온 리비아식 핵문제 해법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들어냈다.

북한은 강요된 선 핵포기, 즉 먼저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미국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리바아와 미국과의 적대 관계는 테러와 반미주의에서 비롯됐다. 반면 북한과 미국은 과거 전쟁을 벌였던 뿌리 깊은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리비아에서 실현하려 했던 정권교체는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가 친미로 돌아서면서 그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 대해 단순히 정권교체 뿐 아니라 체제 전복을 노렸다.

북한이 아무리 핵을 포기한다하더라도 미국이 북한 체제를 가만히 놔둘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 측의 주장이다. 북한도 태도를 바꿔 리비아식 핵 해법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리비아식 등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보고 있는 리비아식 핵 해법에 대한 시각은 미국의 시각과는 크게 다르다. 북한은 리비아의 대량 살상 무기 포기 선언 전 미국과 리비아와 벌였던 양자 비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선호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리비아식 해법을 따르길 원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남아있는 두 '악의 축' 즉 북한과 이란과는 리비아와 전적으로 다른 식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는 리비아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고유가가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산유국인 이란의 석유 공급 축소가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란에는 석유 수출을 방해하는 제재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폐쇄적인 북한 또한 과거 몇 년간 미국과 다른 서방국들이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제재 조치가 리비아처럼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것이다. 리비아의 경우 미국이 핵 포기에 대한 대가로 외교 관계를 전면 복원한 배후에는 리비아의 석유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국은 리비아를 떠나있던 미국의 석유회사가 리비아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을 재개하길 원했다. 리비아와 북한-이란의 상황이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또 있다.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북한이나 이란만큼 핵개발에 근접한 수준까지 전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핵 프로그램을 진전시키며 핵으로 미국에 맞서길 원하는 북한-이란을 설득해야 했다. 리비아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비참하게 죽은 카다피를 생각하면 북한이 그 같은 모델을 따르는 것을 주저할 수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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