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秋收) 감사제?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11/21 [17:00]

추수(秋收) 감사제?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11/21 [17:00]

 
간밤에는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고 강풍이 몰아쳐, 창문을 흔들어 대는 통에 단잠을 설쳤다. 주일 아침, 깊어가는 만추(晩秋)!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을 알리는 찬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을씨년스런 날씨지만 예정된 충청도 여행길을 떠났다. 추수가 끝난 지평선이 보이는 텅 빈 김만경 들판을 지나 군산 도심지 근교에 다 달았다. 하늘을 찌를 듯 도로변에 우뚝 솟은 화려한 고딕양식의 첨탑이 높이 솟아 위용을 자랑하는 교회당이 보였다. 예배시간이 되어 아내와 같이 그 예배당에 들어갔다. K시에서 한 때는 번창한 대형교회로 대지가 5,000평, 연건평만도 1,200평으로 황금알을 낳던 교회가 지도력이 부족한 목사와 신도 간 내홍으로 1,000여명을 수용한 큰 예배당에는 듬성듬성 겨우 200여명이 모인 찬바람이 부는 그것도 거의가 노인들이 앉아있다. 어쩜 20여 년 전 여행 시 프랑스의 몽마르트 언덕 위 텅 빈 큰 성당을 보는 것 같다. 긴 통로에 아스라이 보이는 높은 강단의 젊은 목사의 청아한 찬송소리가 스위스 산정(山頂)알프스 목동의 애처로운 요들송 같다. 강단 앞에는 누렇게 익은 둥그런 호박과 잘 익은 붉은 사과와 감,배와 묵직한 햅쌀 부대가 놓여있고 울긋불긋한 꽃으로 장식되어 오늘이 추수감사 기념절임을 알 수가 있다. 설교제목도 ‘감사하라’는 주제의 설교였다. 1620년 9월 16일(율리우스력 9월 6일)존 카버, 윌리엄 브래드퍼드를 비롯한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180톤급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북아메리카)으로 떠났다. 선상의 질병으로 시달리면서 66일간의 어려운 항해를 거쳐,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린 것은 11월 21일(율리우스력 11월 11일)이었다. 이들은 당시 두 번째로 큰 이민단으로 원래의 목적지는 허드슨 강 하구의 현재 뉴욕 시 인근으로 당시 영국의 버지니아 정착민의 북쪽 끝의 땅이었다. 버지니아 정착민은 미국 최초의 영국 이주민이 이들보다 13년 먼저 1607년에 도래하여 건설된 제임스타운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는 항로를 이탈하여 늦게 도착을 하여 이미 계절은 겨울이어서 케이프코드에 머물면서 월동을 하게 된다. 그해 겨울 플리머스에 상륙한 이들은 반수 이상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인디언에게서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 최초의 혹독한 겨울을 넘기게 된다. 1621년 3월 31일(율리우스력 3월 21일), 겨울 동안 배안에서 살아남은 승객들은 플리머스 해안까지 이동했고, 메이플라워호는 그해 4월 15일(율리우스력 4월 5일)에 잉글랜드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첫해에 씨 뿌려 가꾼 농작물을 모아놓고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한 것이 추수감사제의 시초라고 한다.  추수감사절이란 근거는 성경에도 없으며, 통상으로 이에 대한 정의를 추수감사절이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절기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1789년 11월 26일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국경일로 제정됐다. 또한 1941년 의회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지정했다.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지키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대체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천주교, 장로교, 감리교는 물론이며 소속된 모든 단체들이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추수감사절이란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을 뿐이며, 구약 신명기16장13절에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적혀 있다. 미국이 건국하여 워싱턴 초대 대통령에 의해 추수감사절이 제정됐을 때 이들은 성경과의 연관성을 두기 위해 이러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이 첫 수확물을 얻었을 때 감사와 기쁨에 찬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그 행위는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었다. 미국으로 부터 수입된 우리나라 개신교는 그런 의미에서 추수감사절로 이날을 기념한다. 추수감사제는 우리고유의 명절인 추석명절과 같은 수많은 인구가 부모와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범국민적인 중추절(仲秋節) 축제와 흡사하다 하겠다.
영국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매사추세츠에 도착하기 전에 그 배에서 소위 메이플라워 서약을 하였는데,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정치체제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을 서약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의회의 설치와 자치체제의 형성은 그 뒤에 건설된 다른 식민지에도 도입되었다.
메이플라워 서약은 41명이 다음과 같이 서약을 하였다. ‘영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서약하고, 자치사회를 형성하여 질서와 안전을 도모하며, 평등한 법률을 만들어 관제를 정한 다음 여기에 종속할 것을 맹세한다.’라고 되어 있다.
상륙 직전에 배 안에서 맺은 ‘메이플라워 서약’은 다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부의 설립을 결정한 것으로써, 미국 민주정치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은 점점 세력을 확보하여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대거 이민을 받아들여 1774년 ‘메이플라워 서약’을 파기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고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을 뛰어넘는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미제국주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자기네 선조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와 개척정신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서 독립 국가를 만들어 낸 것에 자부심은 물론 위대한 미국이라는 걸 자랑삼아 한국과 일본 등에 군사기지를 세워 자기네 것인 양 오늘도 성조기를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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