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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송씨(礪山宋氏)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4/10/10 [06:32]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본관을 여산으로 삼았다. 시조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때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의 후손 송자영이다. 그는 3형제를 두었다. 장남 송유익은 여산송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송천익은 은진송씨, 막내 송문익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어 우리나라 송씨의 근간을 이룬다.
고려 후기 원종대의 송송례(4세) 때에 가문이 성장하기 시작한 여산송씨는 조선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관, 대작을 배출한 대성이다. 송송례는 고려 원종 때 공을 세워 좌명공신이 된다.
여산송씨는 6세손에서 크게 5개 파로 갈라진다. 송 휘(宋煇)계가 원윤공파, 송방영계가 밀직공파, 송원미계가 소윤공파, 송린계가 지신공파, 송서계가 정가공파로 나누어진다.
송송례의 아들 송 담은 군부판서에 올랐고, 그 아들 송방영은 밀직부사를 거쳤으며 충렬왕을 보필하여 크게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송 담계보다는 그 동생인 송 분계가 더욱 세력을 얻어 가세를 떨쳤다.
송 분의 자손들 중에서 지신공파는 7세 송 교가 만년에 전북 정읍에 속해 있는 고부로 퇴거해 한 이래 그 곳에 많은 자손들이 살았다. 지신공파는 조선 개국 후에도 여전히 많은 관직자를 배출한다. 특히 지신공파의 11세손이 송현수이며 그의 딸이 바로 단종비 정순왕후다.
지신공파는 양의공 송분의 둘째 아들인 송 린을 파조로 한다. 지신공의 아들 송 교는 문과를 거쳐 벼슬을 하다 아버지가 주륙되자 운주산에 은거한다. 그의 아들인 송 희는 가정대부 공조전서에 이르렀고 태종과 친분이 두터웠다. 지신공의 후손들은 단종의 양위와 세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영욕을 번갈이 가며 거치게 된다.
송익손은 단종 원년에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 3등이 되었다. 이와는 달리 송석손은 수양대군의 단종 원년 거사에 반대하였으며 세조가 즉위하자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내려가 은거했다. 충열공 송상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동래부사로 재직하면서 왜병에 항전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원윤공파는 송 담(시조 송유익의 큰아들)의 큰 아들인 송 휘를 파조로 한다. 원윤공의 장남 송 준은 태종비 원경왕후의 외조로 삼중대광 여양군에 봉해졌으며 그 후대가 오늘날 대구 쪽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원윤공의 5세손인 송 문은 조선 개국 공신으로 덕성군에 봉해졌으며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원윤공파의 6세손 송 간은 형조참판을 지냈다.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물러나자 고향인 여산에서 두문불출하였다. 김시습, 조상치, 조여, 정지산, 이성희, 이축, 엄흥도와 더불어 팔절(八節)로 불린다.
구봉 송익필은 문장과 도덕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송익필의 형제 송부필과 송한필도 모두 문장에 능했다. 특히 송익필은 사계 김장생으로 하여금 그의 학통을 잇게 하여 조선 예학의 종주(宗主)를 이루었다.
단종비인 정순왕후와 그녀의 친정 아버지 송현수는 비극적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송현수는 본래 수양과는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단종 2년에 그의 딸이 비로 책봉되자 지돈령부사가 되고 여양군에 봉해졌다. 정치사의 변동이 크게 없는 시절이었다면 그는 부원군으로 영달했을 뿐 아니라 그의 집안도 크게 번창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종, 세조조의 정변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수양대군의 두둔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성대군이 사사되는 상황에서는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었다. 결국 송현수는 주륙되고 묘소조차 어디인지 찾을 수 없다.
단종비 정순왕후는 단종의 유배와 함께 궁궐에서 추방당했다. 그녀는 세 시녀와 함께 82세까지 살았다. 친정아버지 이하 일문이 멸족당하는 정변 속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친 것이다. 후사가 없어 마땅히 묻힐 곳도 없었다. 결국 단종의 하나밖에 없는 누이인 경혜공주의 시집인 해주정씨 집안에서 시신을 거두었다. 그녀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사돈댁 해주정씨 묘역에 초라하게 있다. 제사도 사돈댁에서 지내왔다.
현대 인물은 송방용(국회의원), 송요찬(5·16후내각수반), 송성용(서예가), 송하철(전북도부지사), 송준호(원광대교수), 송진섭(전주교육대학장), 송영달(제남간호전문학교장), 송영지(한국문화재보호협회이사). 송지영(한국문예진흥원장, 국회의원, KBS이사장), 송일섭(한국식물자원연구실장), 송호림(전남도지사), 송재구(여수시장), 송정범(주미공사), 송완석(감사원감사관), 송하진(전주시장), 송영식(변호사), 송종진(검사장), 송학상(변호사), 송주환(검사), 송주인(전북은행장), 송삼석(모나미 사장), 송교석(동양사료공업 대표이사), 송영관(삼덕주택회장), 송학엽(오스카여행사회장), 송기환(포항제철 관리이사), 송한(한국휀스기업 대표), 송대엽(육군준장), 송수항(언론인), 송경섭(국회의원), 송동섭(치안감), 송언종(부지사), 송대후(육군준장), 송석문(성문출판사 대표), 송을상(국회의원), 송계일(동양화가), 송정호(법무부장관), 송영주(국회의원), 송기태(동성사 대표), 송진원(육군준장), 송동석(전주진북고등학교 설립자), 송현만(평통전주시협의회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집성촌은 전남 고흥군의 남양면 심교리,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수리, 전남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전남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전남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전남 고흥군 두원면 풍유리,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경북 칠곡군 북상면 오평동 등이다. 항렬자는 26世 인(寅), 27世 현(顯), 28世 의(義), 29世 범(範)이다.
본관 여산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의 지명으로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이 합쳐진 지명이다. 1396년(태조 5)에 여량현이 낭산현을 병합하였고,1399년(정종 2)에는 여산현이라 개칭하였다. 여양(礪陽)과 호산(壺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1896년 전라북도 여산군이 되었고,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여산군이 폐지되고 관할 11개면이 여산면 등 5개면으로 통합되어 익산시에 편입되었다. 여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여산채씨(礪山采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송 식(宋軾) : 문과(文科) 성종 21년(149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세림(宋世琳) : 문과(文科) 연산군 8년(1502) 별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송 겸(문과(文科) 중종15년(152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준(宋駿, 1564 甲子生) : 문과(文科) 선조 27년(1594)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상순(宋祥淳, 1842 壬寅生) : 문과(文科) 철종 14년(186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언신(宋言愼, 1542 壬寅生) : 문과(文科) 선조 10년(1577) 알성시 병과(丙科), 송행길(宋行吉, 1595 乙未生) : 문과(文科) 인조 1년(1623) 개시 병과(丙科), 송시철(宋時喆, 1610 庚戌生) : 문과(文科) 효종 4년(1653) 별시 병과(丙科), 송도석(宋道錫, 1652 壬辰生) : 문과(文科) 숙종 13년(1687)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57명이 있다. 문과 74명, 무과 51명, 사마시 229명, 음양과 1명, 율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여산송씨는 1985년에는 총 48,212가구 200,334명, 2000년에는 총 72,763가구 232,75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4천여 가구, 3만2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51,277명, 부산 10,449명, 대구 4,288명, 인천 6,552명, 경기 23,388명, 강원 4,952명, 충북 3,554명, 충남 15,028명, 전북 29,919명, 전남 30,868명, 경북 6,301명, 경남 5,800명, 제주 7,947명이다. 전남과 전북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56,646명, 부산 10,620명, 대구 5,175명, 인천 13,077명, 광주 9,665명, 대전 5,505명, 울산 2,216명, 경기 49,863명, 강원 4,476명, 충북 4,465명, 충남 10,863명, 전북 24,919명, 전남 16,956명, 경북 5,727명, 경남 4,978명, 제주 7,602명이다. 전북, 제주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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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10 [06:3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