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판도라 상자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4/09/06 [08:26]

니체와 판도라 상자

새만금일보 | 입력 : 2024/09/06 [08:26]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라는 여인이 온갖 재앙이 가득 들어있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 불행과 재앙을 몰고 왔다는 얘기가 있다. 신 가운데 대왕 신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불이 이글 거리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진흙으로 빚은 판도라라는 여인을 인류 최초로 만들게 된 다. 제우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에게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 라고 명령을 한다. 형 프로메테우스는 아우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 여인은 물론 어떤 선물도 절대로 받지 말라고 충고했는데도 판도라의 미모에 반하여 그만 아내로 맞 이하고 말았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에피메테우스는 외출을 하면서 사랑스런 아내 판도라에게 여기 있는 이 상자는 절대로 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판도라는 무엇이 들었는가고 궁금증에 그만 상자를 열었는데, 그 순간 상자 안에 있던 악마와 전쟁과 살인, 강도, 온갖 재앙들이 쏟아져 나와 얼른 닫고 말았다. 상자 안에 남은 것은 다행히도 ‘희 망’이라는 것만 남았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인류 최초의 인간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아담과 하와의 얘기다. 아담을 잠들게 하여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어 아내로 삼게 한 하 느님은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 만은 절대로 따먹지 말라 했는데,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한, 선악과를 그만 따먹어 하느님과의 계율을 어긴 하와는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하여 평화로운 에덴동산에서 내쫒김을 당해 산고의 고통과 저주받을 원죄를 짓게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 얘기 와도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판도라 상자에 남은 희망이 있기에 우리 인간은 행복할까.라고 질 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 인간은 미래적으로 희망 속에 행복을 바라보며 날마다 고통의 시간을 당하면서도 버텨나가고 있는가 하면, 인생은 고행길이니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각기 사람마 다 생각이 다르다고 보겠다. 할 수만 있으면 온갖 고통과 번뇌를 말끔히 씻어내 주는 행복의 신이 우리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마음먹은 대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파랑새의 저자 노벨문학상의 벨기에 작가 ‘메테를 링크(1862-1949)’는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산과 들을 온종일 찾아다녔어도 파랑새는 보이지 안했다. 실망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열고 보니 그렇게 찾아다니던 행복이란 파랑새는 창문 앞 나 뭇가지에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즐거운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내 앞에 있다는 작은 행복부터 맞아 드려야 한다는 행복의 파랑새다. ‘신을 우리 가 죽였다’라고 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부친은 루터교 목사였다. 니체는 두 종교 즉 ‘기독교는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며, 불교는 삶에 지친 노인들을 위한 종교이다.’라고 했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 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망상으로 도덕 이나 종교, 문화, 역사 등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는 유대인 혐오의 근거가 무신론자로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를 나와 교수직에 몸담으며, 인간의 삶이 불행하게 된 원인은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에서 찾는다고 하 였다. 니체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에 대 하여 희망은 참으로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라며 희망은 인간의 괴로움을 연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희망은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어, 기대감과 괴로움을 동시에 준다. 라고 정의 했다. 행, 불행은 어느 때든 우리 마음을 교차할 수가 있다. 불행한 일이 닥쳐와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금 행복을 위하여 그 고난을 감내한다면 언젠가는 행복을 맞이할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평생 살면서 어찌 꽃길만 걷겠는가. 성공한 사람들을 볼 것 같으면 수없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꼭 성공하리라고 확신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 음으로 위로를 삼으며 꿋꿋하게 밀고 나갔기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니체 는 말하기를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미래에 진정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가난을 경험 하지 못한 자 즉 빵에 굶주려 보지 못한 자 빵을 논할 자격이 없다. 라고 했듯 우리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삶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가 있고, 우리를 힘들고 아프게 했던 것이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며 수많은 좌 절과 절망은 삶을 더 아름답게 조각해 주기 때문이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저서에 ‘깊은 고 통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라는 인간 내면에 숨은 깊은 의미를 생각케 하는 반면, 우리 인 생은 그렇게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는 가는세월 속에 속아 산다고 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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